본 연구는 1960년대 전반 석탄산업과 함께 성장했던 탄광촌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경험을 했고, 그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는 가장 열악한 노동 및 생활 조건 아래서도 ‘산업전사’로 추어올려졌던 탄광노동자의 모순적 경험을 이해하고,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한편으로 언제나 탄광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탄광노동자의 상충된 모습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아가 이는 자본가 본위의 산업화와 자본주의체제의 성장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의 남한 노동자들의 경험과 대응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0년대 전반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의 기초였던 석탄산업을 합리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급속한 생산증대를 위한 일련의 석탄증산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책 수행을 위한 정부의 재정 조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가 의도했던 석탄산업의 합리화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외형적으로는 석탄산업의 성장에 따라 생산증대라는 목표가 달성되었지만, 종래의 석탄산업의 모순구조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일부 소수 대형탄광을 제외하면 일종의 광업 소작제인 德大制 생산이 확산되었고, 낮은 수준의 기계화로 인해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의존 역시 심화되었다.
탄광촌의 노동과 생활조건은 대단히 열악했다. 대형탄광의 일부 기계화된 작업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생산은 단순한 작업도구를 사용하는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노동자들은 재해와 질병의 위협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지만, 사업주들이 갱내 안전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탄광 재해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저탄가 정책의 압박 속에서 탄광업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더욱 저임금을 강요했고, 잦은 임금 체불과 생필품 배급 과정에서 사업주의 중간 폭리도 노동자의 생계를 압박했다. 더구나 중소탄광 노동자들은 대형탄광 노동자들에 비해서 임금이나 고용안정성 등에 있어 훨씬 더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폐쇄적인 탄광촌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은 대단히 단조로웠고, 외부와의 소통도 어려웠다. 또한 탄광촌 내부적으로는 관리직과 노동자 간에 큰 차별과 격차가 존재했다.
탄광노동자들은 대부분 탄광에 대한 소문이나 아는 사람의 소개를 통해 탄광촌을 찾아왔던 가난한 농민 출신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탄광을 별다른 배움이나 밑천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했지만, 탄광촌의 실상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이들의 불만을 가중시켰던 것은 관리직과의 차별과 격차의 구조였다. 관리직의 전횡이나 사택 시설의 차별 등 노동현장과 생활공간에서의 지속적인 경험은 노동자들의 평등의 욕구를 자극했고, 노동자들은 관리직에 대한 불만을 쌓아갔다.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산업전사’라고 호명하면서 동원하고자 했지만, 노동자들은 오히려 현실과의 괴리를 느꼈다. 노동자들은 탄광을 떠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나 탄광을 떠나기 위해서나 임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탄광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 여러 불만이 결합하면서 노동조합 조직의 계기가 만들어졌다. 사업주들의 지속적인 노조 설립 방해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 많은 노조 지부들이 결성되었고, 계엄 해제와 민정 이양의 시기였던 1963년과 1964년에 걸쳐서는 임금 인상을 목표로 많은 쟁의가 발생했다. 비록 저탄가 정책의 압력 하에서 실질적인 임금인상에는 이르지 못하고 1964년 이후로는 쟁의도 크게 줄어들었지만, 노동조합 활동은 노동자들이 노동계급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탄광노동으로부터의 강한 이탈 욕구가 존재했고, 이는 노동자의 계급정체성 형성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었다.
노동조합 활동을 통한 임금인상이 벽에 부딪히자, 노동자들의 다른 선택은 최대한의 근면함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출근일수와 생산성은 1960년대 전반 꾸준히 상승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탄광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많은 노동자들은 자녀들만이라도 탄광노동자가 되지 않도록 하고자 했고,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를 보였다.
1960년대 전반 탄광촌은 산업화와 자본주의체제의 성장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경험해야 했던 모순구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공간이었다. 노동자들을 ‘산업전사’로 동원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국가와 자본, 산업화를 위한 석탄증산정책 추진과 함께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던 노동조건, 탄광촌의 공간적 특수성 속에서 배가되었던 차별과 격차의 구조가 이러한 탄광촌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그러나 탄광촌의 모순구조가 곧바로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노동운동과 계급의식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전반 탄광촌을 찾은 농민들이 지니고 있었던 평등의 욕구와 상승의 욕구는 때로는 충돌하고 또 때로는 결합하면서 노동운동, 근면함, 자녀 교육열 등으로 표출되고 있었다.